| [정민의 세설신어] [152] 잡채판서(雜菜判書) Apr 3rd 2012, 14:14  | 광해군이 외교 수완은 어땠는지 몰라도 내치(內治)는 어지러웠다. 폐모살제(廢母殺弟)는 백성도 죽음을 면치 못할 반인륜적 행위였다. 권력에 눈먼 측근들이 곁에서 이를 부추겼다. 이충(李冲)은 겨울철이면 집안에 온실을 지어 채소를 심었다. 맛난 반찬을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임금께 올렸다. 이 일로 총애를 입어 호조판서에 올랐다. 그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잡채판서 납신다'며 침을 뱉었다. 한효순(韓孝純)은 산삼을 구해 바쳐 재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산삼각로(山蔘閣老)'라고 불렀다. 각로(閣老)는 정승을 일컫는 말이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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