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2년 7월 16일과 11월 15일, 소동파는 적벽에 놀러 가 전후 '적벽부(赤壁賦)'를 각각 남겼다. 당시 그는 왕안석의 신법(新法)을 반대했다가 황주(黃州) 땅에 유배된 죄인의 신분이었다. 7월의 흥취가 거나했던지, 동파는 11월 보름에 벗들과 다시 겨울 뱃놀이를 감행한다. 똑같은 장소임에도 이곳이 그때 여긴가 싶으리만치 느낌이 달랐다. 맑은 바람이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조차 일지 않던 그 강물은 물살이 빨라져 소리를 냈다. 이슬이 하얗고 무성하던 잎은 모두 땅에 지고 없었다. 배가 적벽 아래로 들어서자 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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